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그레나다 해전 (문단 편집) == 전투 경과 == 1779년 7월 6일 아침, 존 바이런 제독이 이끄는 영국 함대가 그레나다 앞바다에 모습을 드러냈다. 데스탱 백작은 즉각 전투 태세를 갖추려 했지만 북동쪽에서 불어오는 강력한 바람 때문에 제대로 이동하지 못했고 좌현 쪽은 해안에 너무 근접해서 배가 가라앉을 위험이 있었기 때문에 우현 쪽으로 천천히 이동해야 했다. 바이런은 많은 프랑스 전선들이 항구 밖으로 나오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 굳이 전열을 갖추고 천천히 공격하는 것보다는 즉각 돌격해 적을 쓸어버리는 게 낫겠다고 판단했다. 또한 그는 프랑스 함대의 규모를 실제보다 과소평가하고 있었기에 정면대결을 벌이는 걸 망설이지 않았다. 이에 바이런 제독은 전위 함대에 소속된 프린스 오브 웨일스와 술탄, 보이네 호에게 즉시 출격하여 적의 후방을 차단할 것을 지시했다. 명령을 접수받은 영국 전위함대는 순풍을 타고 적을 향해 나아가 포격전을 개시했다. 그런데 이제 막 전투를 시작한 7시경에 바람이 돌연 프랑스 함대 쪽에서부터 불기 시작했다. 데스탱 백작은 덕분에 함대를 우현으로 기울어진 전열로 편성하고 영국 전위 함대를 향한 반격을 개시했다. 바이런은 적이 대열을 갖춘 것을 보고 비로소 적의 규모가 생각보다 훨씬 많다는 걸 깨달았다. 그러나 그는 후퇴 명령을 내리는 대신 전군에 적선을 향해 근접할 것을 지시했다. 그러나 프랑스 함대는 적 함대에 포격을 가하면서도 적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다. 영국 함대는 이들을 추격하다가 전열이 거의 흐트러졌고, 너무 멀리까지 가버린 그렉톤, 콘월, 라이온 호는 적의 거의 모든 함대에게 공격당해 사실상 무력화되었다. 결국 바이런은 전술을 바꿔 전위 함대와 중앙 함대에게 집결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명령이 제대로 전달되기까지는 시간이 오래 걸렸고, 그 사이에 부제독 사무엘 베링턴이 이끄는 전위함대는 적의 맹렬한 공격으로 인해 큰 피해를 입었고 베링턴은 팔에 부상을 입었으며, 베링턴의 기함 프린스 오브 웨일즈는 심한 손상을 입었다. 반면 하이드 파커 제독이 이끄는 후위 함대는 대부분 전투에 가담하지 않고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전투를 지켜봤다. 이렇듯 전열이 엉망이 되었으니 제대로 전투가 이뤄질리 만무했고, 영국 해군은 자칫하면 이 전투에서 몰살당할 위기에 몰렸다. 그러나 데스탱 백작은 적을 섬멸하는 것보다는 그레나다 섬의 지배권을 지키는 걸 우선시했고, 오후 3시 경에 전 함대에게 그레나다로 물러서라고 지시했다. 바이런은 이 틈에 함대를 수습하여 전장을 멀찍이 떠났다. 이리하여 그레나다 해전은 프랑스의 승리로 종결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